ㅡ 내가 그를 만난 건 22살의 겨울,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그는 흰 가운에 말끔한 모습으로 엉망진창이었던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퍼렇게 멍들고 찢긴 입술과 어디 한군데 정도는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팔다리, 온갖 악감정은 다 품고 있던 시커먼 눈. 그는 그런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던 젊은 애송이를 자신이 '구원해주겠다'는 것 마냥 오만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법 유능한 의사였다. 다만 나를 불안하게 했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그 의사의 외관이 나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치료하는 방식이 무지막지하다는 것, 마지막은 심성이 매우 삐뚤었다는 것이었다.
"조금. 아니, 많이 아플 거야. 엄청. 이딴 가벼운 상처에 써줄 마취제는 나한테 없거든. 소리는 질러도 되는데 난동 피우지는 마라. 그러다 잘못 찔리면 골로 가니까. 나 말고 너. 주변에 한번 둘러봐. 손님이 어디 너뿐인지."
나는 그가 판단하는 '심한' 부상의 기준을 알 수 없었다. 건물 안인지 지하인지 모를 그 장소에 있는 동안에 마취제를 쓰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환자에게도. 그들은 이미 익숙한지 생살에 칼을 대는데도 아무런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이를 악물고 참아낼 뿐.
마취제도 없이 하는 불안한 치료는 뜻밖에도 성공적이었다. 아마도 그가 이 바닥에서 알아준다는 '자칭' 매우 유능한 의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유능한 의사에게 자격도, 지위도 없다는 것은 치료가 끝난 뒤에야 안 사실이었다.
치료를 마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마침 날 깨우려고 찬물을 뿌리려던 그를 본 나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참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가 테이블 위의 각종 도구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고맙다고 하기에는 그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멀쩡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중에라도 이상이 생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리를 마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꾹꾹 눌러 참았던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왜 그 능력으로 정식 의사가 되지 않았냐고. 그의 대답은 참 현실적이었다.
"살리기만 하면 재미없지."
"당신 방금 날 살려놓고 무슨 소리야."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자, 여기가 어디야. 딱 보기에도 번화가는 아니지? 응? 이런 밑바닥에서 일하면 사방에서 의뢰가 들어온단 말이야. 누굴 죽여달라,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달라, 아예 없애버려라 등등. 물론 이건 돈 때문에 하는 게 맞아. 이런 의뢰들은 수입이 짭짤하거든."
"돈만 보고 하는 짓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뭐. 약간. 취미기도 해. 취미. 마취를 안 하는 것도 그 일부고. 재미도 있고, 돈도 벌고, 일거양득. 그렇다고 내가 치료에 실패해? 그것도 아니지. 부러진 놈 붙여주고 찢어진 놈 꿰매주고 할건 다 하잖아. 그러니까 치료가 조금 아프든 미친 듯이 아프든 죽을 것 같든 참아야지, 지들이 뭘 어쩔거야? 이 바닥에 나만큼 유능한 놈이 또 있기나 한 줄 알아? 난 이 바닥 놈들이 떳떳하게 병원 못 가는 걸 아주 잘 알아. 다시 말해, 아프고 짜증 나고 약올라도 어차피 다시 나한테 오게 돼 있다 그거지."
나는 저런 인간에게 능력뿐만이 아니라 그걸 써먹을 머리까지 준 걸 보면 신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치료한 부분이 채 아물기도 전에 나는 그 장소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올 수밖에 없었다. 22살짜리가 있기에는 험악한 인상들이 많았을뿐더러 그의 환자는 끊길 듯 말 듯 꾸준하게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뭐해, 안 나가고?"
"분명 돈 때문에 한다고 하지 않았.."
"돈이 있긴 하냐. 없는 거 빤히 보이는 놈한테 뜯지는 않아. 아, 그렇다고 공짜로 해준 건 아니다? 갚으러 와. 기억해둘 거니까. 기껏 치료해놨는데 비실거리지 말고 어디든 돈 잘 버는 일 잡아서 니가 거기 머리가 되라고."
ㅡ그래야 내가 너한테 돈을 받지.
저게 그가 날 내쫓으며 한 말이었다.
몇 년 후,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바라던 대로, 돈 잘 버는 놈이 돼서.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건 그리 떳떳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내가 통솔해야 할 사람이 불어나고 다가오는 위협 또한 끊임없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날은, 그 위협에 제대로 당한 날이었다. 칼에 찔려서 피를 왕창 쏟은 탓에 정신이 혼미했다. 숨을 몰아쉬다 못해 천천히 눈이 감기는 와중에 하얀 실루엣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익숙한 실루엣이.
"많이 아플 거야."
"이딴 가벼운 상처에 써줄 마취제, 그런 건 당신한테 없을 테니까."
"그래그래, 오랜만이야. 나도 반가워. 갚을 돈은 가져왔냐?"
예전보다 훨씬 느긋하고 편해진 얼굴이었다. 연륜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도 젊어 보였다. 하긴, 그때도 영 늙은 얼굴은 아니었지.
"치료부터 해."
"어허, 날 못 믿어? 섭섭하게."
"당신이 그랬었지. 의뢰를 받는다고. 내가 그 표적 중 하나가 아니라고는 장담 못 하잖아?"
"똑똑하네. 아주 똑똑해졌어. 그럼 이제 이 악물어. 나 칼 들었다."
그는 여전히 마취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능숙해진 손놀림 덕분에 그때만큼은 아프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치료를 하는 그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지만.
"아파하는 거 보려고 마취 안 하는 건데. 손에 익어서 그런가, 영 아프게 할 수가 없네."
"취미하곤."
"그건 그렇고, 내가 뭐라고 불러줄까? 한 조직의 우두머리를 애송이라고 부르면 나중에 네 똘마니 왔을 때 체면이 안 서잖냐. 안 그래?"
"R."
"하? 거, 이름이라도 얘기해주나 했네. 내가 그렇게 신용이 없냐? 밑바닥 의사긴 해도 네 목숨 두 번이나 살린 생명의 은인인데?"
"그러는 당신한테는 밑바닥 조직 보스한테 이름 석 자 죄다 까발릴 용기 있어?"
"물론 아니지."
"그리고 예전하고는 서로 눈높이가 다르지 않나? 지금 내 위치에선 사람 하나 묻는 거 일도 아닌데."
"나 참, 살려놨더니 협박질이네. 애송이가 많이 컸어."
"입 조심해."
"아, 예, 예. 그럼 대충 예의라도 갖춰드리지. 나한테 바라는 게 뭡니까, R?"
난 그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유능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모로 쓸만한 인재를 멍청하게 눈앞에서 놓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그를 보호해주는 대신 그는 내가 다쳤을 때 치료해주는, 말하자면 '주치의' 같은 걸로. 그도 나를 믿진 않았겠지만 나와 손잡는다고 해서 그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
"보수는? 알잖아. 아니, 알잖습니까? 내가 이 짓을 왜 하는지."
"..바라는 대로."
"화끈하시네. 그럼 합의 본 걸로. 그래도 이름은 말 못해요. 나한테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ㅡ 그럼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지?
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ㅡ S. 오늘부터 당신 주치의 노릇 하게 된 사람.